노엘 사계절 합작
Four seasons of Noël
-가을: 노엘
:가을을 테마로하는 모든 단어들
0.
“햇님. 햇님. 제발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 주세요. 타죽어도 좋습니다. 나처럼 못생긴 몸이라도 탈 때에는 작은 빛을 내겠지요. 아무쪼록 나를 데려가주세요.”
1.
노을이 붉은 계절이었다.
뜨겁게 도시의 아스팔트를 달구던 햇빛이 조금 고개를 숙이고, 강물 위를 반짝거리던 금빛이 찬란하다기보다는 애달픈 색조로 변하는 계절이었다. 어딘가의 선배는 이 계절을 만남의 계절이라고 불렀고, 어딘가의 이야기는 그 계절을 영원할 이별의 계절이라고 불렀다.
매번 같은 밤을 돌고 도는 사람도 있었지. 그에게 있어 이 계절은 여름의 끝이었다. 겨울의 시작이라고도 했다. 뭐야 그거 가을이잖아 장난쳐? 라고 말했더니 노엘은 좀 더 공부를 하는 게 좋겠네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손해를 보는 대화였다.
애초에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가지고 오는 쪽은 내가 아니라 그라상 쪽이다. 야마상도 모르는 판타지란 말이지. 마리마리가 알면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 이성으로 인터뷰어즈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뒀다. 그러니까 밤중에 검은 옷에 검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쓰고다니는 그라상이라는 사람이, 까지만 이야기해도 수상하니까 경찰에 가보자고 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노엘 본인에게도 그 정도의 현실감각은 있었다. 그 사람하고 만나면 장르가 바뀌어버리니까 이야기할 때 조심해야해, 하는. 어디서 만들었는지도 모를 기타를 턱하니 안겨줬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어쩌면 비밀조직의 보스 이런 거 아닐까. 외계인이라도 좇는 조직 아니냔 말이지. 무슨 영화에서 빛을 보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장치가 나온다고 하던데 그런 짝이 아닐까. 그렇게 물어도 노엘은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좋을 때지~ 하는 소리나 돌아올 것이다. 너무 상상이 쉽게 가서 슬퍼졌다.
하여간에 이해가 안 되니까 가을이잖아? 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라는 게 할로나이 군이 슬퍼할 거야. 기껏 날짜도 줬는데. 란다. 왜 갑자기 남을 양심없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선배의 자리를 찬탈하기를 했어 기념일을 빼앗기를 했어 신분제를 무너트리기라도 했어??? 억울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배선이 모두 저지르셨네요 라고 말하는 환청이 들렸다. 알 게 뭐야. 이쪽은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계절이었다. 정오에 오른 태양이 짧게 표시하던 시침이 점차 길어지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고, 흐르고 또 흐르는 그런 계절이었다. 여름의 마지막은 아니더라도 겨울도 아닐 그 계절에 거짓말 같은 오프닝 공연을 했다. 당일까지 정말 그런 곳이 있는 거야? 사기 당한 거 아냐?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뛰어들어보기로 했다. 이게 거짓말이라면 거짓으로 세상이 가득 차도 좋았다. 이치조는 말했다. 노엘. 그건 그냥 사기 당하는 사람의 변명이야……. 너 사실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던 거잖아……. 이치조는 내가 길거리에서 한 즉석 콘서트에서 기타 가방을 여는데 손을 좀 버벅거린 이래로-정말 조금 버벅거렸다, 조금-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착각이었으면 좋겠는데 착각 아니겠지.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베보 녀석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삐삐 거리는 거 잘하잖아? 뭔가 좀 궁금한 게 생기기라도 하면 사람 잠도 못 자게 방을 번쩍거리는 푸른 빛으로 채우면서 괴롭히잖아? 가끔가다가 뭘 잘못 먹었는지 빨간 조명도 띄우잖아? 밤에 눈을 떴더니 방이 정육점 조명일 때의 내 기분도 좀 생각해주지 않을래? 고어와 공포는 어딘가의 복수의 지평선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고양이는 꿋꿋했다. 꿋꿋하니까 고양이인 것이다. 패배하니까 집사인 것이다. 전자고영의 집사라고 해도 다를 바는 없었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고양이는 새를 잡아먹는다. 잡식성이니까. 그러니까 쏙독새의 이름을 쓰는 시점에서 고양이를 이기긴 어려운 것이다. 밤매는 꽤 용맹한 이름이지만 전자고영은 사기야. 좋아요. 의식의 흐름. 이 자세로 어느 집사의 노래를 작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레인의 세계 가사를 조금만 손 보면 되지 않을까? 선글라스도 눈이니까 비슷할지도 모른다. 전자고영이 삐삐거렸다. 지 욕을 하는 건 귀신같이 아는 것 같다.
그림자가 하나 더 따라왔다.
2.
그림자가 하나 더 따라왔다. 사람의 영혼에 무게가 있다면 몇 그램일까. 그렇다면 전자기기의 영혼에는 얼마 만큼의 무게가 있을까. 고양이 한 마리. 낮고 날렵한 그림자. 그림자가 꼬리를 흔든다. 그림자가 둘 따라왔다. 그림자가 셋 따라왔다. 그림자가 넷 따라왔다. 고양이 네 마리. 달을 향해 노래라도 부를 셈일까. 멍청한 러브송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이딴 세상 확 망해라 하는 저주송일지도? 그 중 하나는 영원히 기억에 남는 고양이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림자가 하나가 되었다. 그림자가 하나 따라온다. 그림자가 하나. 그림자가. 그림자가.
세상은 거대한 그림자다. 밤이 하늘을 삼키면 쏙독새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째서 그 새는 하늘을 향해 오르고자 한 것일까. 배운 적도 없는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림자 같은 사람이 밤에 묻힌 책을 주었다. 그 새는 왜 불타려고 했던 것일까. 풀벌레 하나의 죽음에도 마음 아파한 주제에 어떻게 하늘을 날겠다고 생각한 걸까.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지.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싶지도 않고 자신이 상처 입는 것도 싫어서 도망친 곳이 하늘이었을지도 모르지.
쏙독새가 날아간 하늘은 겨울하늘이었을 것이다. 지상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을 테니까. 돌아보는 일 없이, 망설임도 없이 석류를 삼키는 아가씨처럼.
노엘은 가을의 밤하늘을 본다. 높고 푸른 하늘이다.
3.
석류는 붉은 과실이다. 그 붉은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사과는 붉은 과실이다. 그 붉은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어떤 죄악은 붉은 과실이다. 그 붉은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그렇기에 과실을 삼키고 시작되는 죄악의 계절은 가을은 되지 못한다.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열매가 죄악이었을까, 붉음이 죄악이었을까.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모릅니다. 태어나는 것이 죄가 되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잘못이었다.
모든 인간은 이미 도덕이고 진리고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그저 헤매며 진창을 구르며 그럼에도 여로를 나아간다. 우리는 이미 정의를 노래하지 않고, 우리는 고작 한 사람의 주관으로 세상을 바꾸어버릴 정도로 이기적이며, 우리에게 이미 세상에 통용되는 도덕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이미 천국을 믿지 않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이 갈 지옥도 떠올리지 못한다.
소설가의 세상이었다. 따뜻하고 안온하며 질서가 가득한 세계에서 쫓겨나서,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유희로 소비하고, 오히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더욱더 죄악을 저지르며, 그러면서도 돌아올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이방인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당신도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죽는 이야기. 어머나. 당신도 좋아하지요.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 신문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무례한 관심이 쏟아지고 민족에 이름이 붙고 정부가 생겨나며 공권력이 치안을 담당하는 순간에 태어나는 어떤 이야기들을 당신은 좋아하지요. 여자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이유는 당신도 잡지 못하는 무능한 경찰이어서인 게 아닌지?
여자는 웃는다. 하지만 모든 사건은 벌어지기 전에는 붙잡을 수 없지요. 특히 살인사건은요. 현실에서의 이야기야 다르다고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신문 속에서의 이야기나 소설 속에서의 이야기나 연극 속에서의 이야기나 별다른 차이는 없는 것을. 죽음을 즐겨요. 존엄을 무시해요. 어차피 남을 것은 그 정도랍니다. 그런 면에서는 작가님이나 나나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닐까?
세상이 싫으시지요. 붉은 목소리였다.
세상이 싫지요. 황혼녘의 붉음은 아닐 터였다.
아가씨가 주저하지도 않고 석류를 삼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생각하고는 한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붉은 열매를 삼켰다. 그것이 지상의 재앙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랬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아가씨가 주저하지도 않고 붉은 열매를 삼켰다. 그것이 죄악이 될 줄 알았으면서도 그랬을까. 그랬을 것이다. 눈이 밝아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부끄러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오만의 죄마저 우리가 손에 낳은 자유였다고 호도할 정도로는 박식한 것이다. 아, 그렇지만 아가씨가 돌아가지 않아 지상을 불태우는 계절은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지 않습니까. 목이 타는 여름. 가을을 축복으로 여기는. 그렇기 때문에 그 열매는 가장 마지막까지 붉던 열매일 것이며.
그래요. 우리들의 마음과 같은 색을 하고 있겠죠.
어머나. 그 아이의 색과는 다르잖니?
보라와 하늘색은 파랑과 붉음과는 다르다. 그 색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으면 유감일 뿐이다. 하지만 어차피 붉음이란 무엇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나. 그리고 첫 번째 희생자가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지고 나면,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마치 제물을 기다리는 예식과 같다. 규칙적으로 누군가를 죽여 묻어버리고 그의 이야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그가 죽어가는 과정을 사랑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범인을 잡지 않는다. 그야 처음부터 잡혀 들어가서는 곤란하잖아요. 사실은 누가 범인인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 중요한 건 시체지. 정황증거와 그것을 통해 탐정이 얼마나 망상의 나래를 펼치는가 그 정도란다. 범죄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깔끔하게 이야기를 만드는 동안 초인의 행동처럼 되어버리지만 말이야.
마치 많이 죽여본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추리소설가보다는 업이 작지요. 그렇지 않나요? 선생님.
죄악이 익는 계절은 붉은 계절이다. 증오가 익는 계절 역시 그러하다. 가장 잔인한 배신은 겨울에 오고, 타는 듯한 갈증은 여름에 온다. 가을이 그리움의 계절인 것은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인가, 죄악이 남아있기 때문인가. 쫓겨난 낙원의 꿈을 사람이 여전히 꾸기 때문인가. 남자와 여자는 붉게 웃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에 둘의 얼굴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이래보여도 우리는 당신보다는 박식하답니다. 적어도 어느 계절에 대해서는.
4.
“아니 나는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5.
나의 새가 하늘로 날아간 날은 가을이었을 것이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늘이 높으니까. 하늘이 넓으니까. 깨끗하다는 점에서는 겨울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가을이 아닐까. 왜냐면 그 새는 벌레를 먹을까 말까 고민했잖아. 겨울이었다면 굳이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노엘. 책을 꼼꼼히 읽으면 나오잖아. 빌어먹을 그라상이 웃는 소리가 선했다. 알 게 뭐야. 내가 좋은 대로 이해하면 되는 거잖아. 애초에 나는 그 소설 결말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야.
이왕 빛나는 별이 될 거라면 맑은 하늘이 좋다. 불타버릴 거라면 깨끗한 하늘이 좋다. 그래도 살아남을 거라면 역시 가을이 좋다. 겨울이라면 조금, 죽음에 가깝지 않을까. 사라져버리려면 역시 겨울이 좋지. 얼어붙듯이 푸르게 타면서 계속해 빛나려면 겨울의 북극성 근처가 좋지. 모두가 나를 잊어버리기를 바란다. 지상에서의 나는 너무도 추하고, 추하고, 끔찍했기 때문에. 한 순간에 불타 별이 되는 게 좋다. 보고 싶지도 않은 몸을 불태워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별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러면 이 삶에도 의미가 하나 생긴다. 적어도 별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쏙독새의 별은 그런 이야기였다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어쩌면 양심이 찔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야기가 그렇게 읽히는 자신이 싫어서? 성대한 자살이었다. 그렇게 끝나는 게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그라상과 만났고, 책을 읽었고, 그 비참했던 밤 나는 결말을 비틀었다. 옛날의 나였다면 좀 더 그쪽 이야기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면서.
살아갈 거라면 가을이 좋다.
별이 적은 계절이 좋다.
나를 봐줘. 나는 여기에 있어. 내 노래를 들어. 욕심이 있다면 역시 가을이 좋다. 욕심 많은 가수가 자신의 목소리로 지평선을 채우기 위해서는 역시 별이 적은 계절이 아름답다. 나는 욕심이 많으니까 저 밤하늘까지 나의 것으로 하고 싶은데. 그리고 빛나는 별이 되고 싶어. 삶에 의미를 남기고 싶어. 불탈 거라면 아름답게 불타고 싶어.
하지만 사라지는 건 억울해. 그런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언젠가 사라질 별이라 해도 그건 싫어. 끝이 있기에 더 아름답게 불타고 싶다고 해도 나는 어떤 이야기들을 부정해왔다. 오래 살아가는 이야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을 부정한 이유가 만족스러운 끝을 위해서일까? 끝이 있기에 아름답다는 소리는 헛소리야. 선택해야만 한다면 선택하겠지만 죽음이 아름답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는 그 결말만은 납득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점에서부터 선배들과는 엇나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썼다. 새로이 썼다. 어찌보면 취향이 까다로운 고양이처럼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를 툭 쳐서 굴려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 배웠으니까 저 고양이도 저 모양이지. 전자고영이라 해도 집사를 닮는 건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늘이 높고 식량이 풍족하지만 점차 추워지기 시작하며 이별을 독촉하는 계절은, 쏙독새가 사냥당할 것 같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야 쏙독새도 빠르지만 고양이도 상당히 빠르다. 야생의 최종보스인 셈이다.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을 닮아버리고 보여주기 싫었던 부분을 보여주게 된다. 있잖아, 고양아. 너는 어떤 계절이 좋으니. 만남의 계절은 겨울이었고 이별의 계절도 겨울이었다. 연인을 만나게 하기 위하여 성인이 희생했다는 어느 겨울날에, 그러나 많이 닮았지만 다른 어느 지평에서는 가을날에. 있잖아. 가장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느 계절이 좋다고 생각해. 가을을 넘어서는 길목이었다. 혹은 가을에 들어서는 길목이거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계절들. 그러니까 가을 하늘이 좋아. 겨울 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보다는 그 편이 좋아.
성탄절의 그 별은 탄생을 축복했지만 그만큼의 죽음을 품은 별이엇다. 수많은 아기들은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것이다. 노엘은 이따금 자신이 운 좋아 살아남은 아이인지 사실 그날 이미 죽어버린 아이인지 궁금해 하고는 했다.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모르지만, 이 고양이라면 분명히 가장 행복한 결말을 주겠다며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를 선사해주겠지. 불만에 가득 찬 소리로 삐삐거렸다. 오류 메시지는 안 들을 거네요. 선글라스를 탁 소리 나게 접으니 조용해졌다. 왠지 이치조가 울기 시작했다. 아니 걔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5.
겨울이 오기 전에 석류를 먹어.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과실은 가을에 난다고 하여도. 그러면 이별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하나 늘어난 그림자가 제멋대로 뛰놀았다. 어린아이의 그림자. 언젠가의 내가 잘라낸 것. 나는 여기 있어. 여기 있어요. 엄마. 사랑받은 것이 좋았을지, 사랑받지 않은 것이 좋았을지 알지 못한다. 당신을 용서할 수 있는지, 당신을 용서할 수 없는지 이제 와서는 의미가 없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나를 필요로 해주세요. 나를 봐주세요. 스타라는 건 어느 정도 관종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직업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예정일이 겨울의 영광스러운 날이었으니 이름을 그렇게. 어쩌면 아버지가 죽은 날은 가을이었을지도 모르고.
네가 나를 닮고 배운다면 고양아, 너는 누구를 미워하니?
6.
“햇님. 햇님. 제발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 주세요. 타죽어도 좋습니다. 나처럼 못생긴 몸이라도 탈 때에는 작은 빛을 내겠지요. 아무쪼록 나를 데려가주세요.”
그래서 노엘은 그날 밤 쏙독새의 말을 바꾸기로 했다. 정말로 불타 죽고 싶었을 리가. 불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게, 붉타 죽고 싶다는 말과 같은 이야기일 리가. 사랑받고 싶었다. 긍정받고 싶었다. 내 노래를 들어주길 원했다. 그러니까. 가을은 죄악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타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오만한 죄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붉은 웃음을 짓는 그들과 푸르게 불타는 청년은 같은 본질을 갖고 있다.
오만한 청년은 이야기를 바꾸었다. 살아주길 바라. 그러니까 고양이도 버릇없는 주인을 배우는 것이다.
7.
장미가 붉은 계절이었다. 나의 새는 가을 하늘을 날았을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나를 닮았다면, 고양아, 너는 누구를 좋아하니? 누구를 만나고 싶니? 위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추한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만 나의 삶이었고 나는 누군가가 그것을 부정하기를 원치 않아.
하지만 당신을 만난 것이 기적이며 마법이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모순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가을은 유예의 계절이다. 열매를 삼킬 때까지의 시간. 이별을 하기 전까지의 시간. 무지한 상태로 오래 남을 수 있는 시간이다.
노엘은 어쩌면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당신의 생각 이상으로 박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을 돌리고 눈을 감는다. 때로는 보지 않아도 좋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계속 망설이는 어느 가을이. 붉게 타는 장미를 여름에 두고, 붉게 타는 증오를 겨울에 두며 유예를 허락받는 계절이. 열매가 익을 때까지 좀 더 기다려줘. 나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되지 못했다. 이 오만을 휘둘러 모든 것이 나의 꿈이었노라고 이야기할 준비가 되지 못했다. 그러니 이 모든 걸 우연이라고 이야기하는 잠시를 기다려줘. 나는 아직은 좀 더 어리석고 싶어. 별이 되기 위한 이별을, 살아가기 위해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에 나는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으니까. 고양이가 울었다.
역시 선배. 나는 당신들의 이야기가 싫은 것 같아.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