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사계절 합작
Four seasons of Noël
귓가를 어지럽히는 이질적인 소리에, 노엘은 아슬아슬 수면 위를 걷듯 겨우 빠져 있던 잠 속에서 일순 토해져 나온 것처럼 번쩍 눈을 떴다. 눈 앞에 비치는 것은 익숙한 천장, 아직 해가 채 뜨지 않은 시각인지 커튼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그림자가, 혹은 어떤 빛이 멋대로 길어졌다 짧아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잠에 취해 있던 정신을 한 순간에 맑아지게 만드는 소리. 귓가에서 끊임없이 맴돌아 단 잠마저도 달아나게 만든 그 소리. 노엘은 뺨에 닿아오는 서늘한 바람을 느낀다. 지금의 계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온도.
그는 튀어 오르듯 번쩍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움직인 탓인지 심장이 거세게 날뛰었다. 목에서, 손목에서, 머리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맥박이 요동친다. 목에서 두근거려 숨통을 죄이고, 손목에서 두근거려 손 끝으로 가는 피를 가로 막고, 머리에서 두근거려 생각을 멍하게 하고, 가슴에서 두근거려 사람을 끝도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한다. 아찔하게 흐려졌다 밝아지는 시야에 가쁜 숨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그는 저릿한 손가락으로 제대로 덮고 있지도 않았던 이불을 그러쥐었다. 귓가에서 들려오는, 거슬리는 소리. 아아, 그것은 지나칠 정도로 가까운 빗소리였다.
두려움인지 아닌지,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덥다는 핑계로 밤새 열어두었던 창문을 바라보았다. 좁은 방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허공으로 나부끼는 커튼의 움직임이 평소보다도 무겁고 느릿하다. ‘아.’ 그는 작은 소리를 내뱉는다. 자고 일어난 직후라 잠긴 목소리가 낯설었다. ‘좆 됐다.’ 그 말은 목소리로 내뱉었던지, 속으로만 했던지.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와중에도 커튼이 젖어서 더 어둡게 색이 침잠되어 있는 것은 선명하게만 보였다. 귓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방 안으로 들이치는 사나운 빗소리.
서늘하다고 느꼈던 방 안의 공기는 서늘한 것 이상으로 습했다. 습하고, 축축했다. 마치 넝쿨처럼 발목에 엉킨 이불을 다른 쪽 발로 차서 떨어뜨리고,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섰다. 커튼은 한 눈에 보기에도 이미 다 젖어있었는데, 방 바닥은 얼마나 젖었는지 아직 감이 오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서둘러서 열린 창으로 다가가 젖은 커튼을 들추고 활짝 열린 창문을 닫았다. 비가 어찌나 많이 내리는지 그 잠깐 사이에 팔에 흥건히 빗물이 맺힌다.
발바닥을 삼켜버릴 정도로 고인 빗물, 코를 간질이는 비린내. 무겁게 쳐지는 젖은 커튼과 창 하나 닫았다고 한층 멀어진 빗소리.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그는 겨우 벽에 걸린 시계 속 시각을 읽어낸다. 밤보다 낮이 훨씬 긴 여름임에도 해가 채 뜨지 못한 새벽 4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그는 고인 웅덩이 위에서 맨발을 찰박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마른 걸레로 물기를 훔쳐내고, 잔뜩 머금은 빗물을 짜내고 한 번 더 닦아내고. 그런 김에 여기저기 먼지가 보이는 곳도 한 번씩 문질러주고. 온통 젖어서 무게를 불린 커튼만큼이나 무거워진 걸레를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대충 빨고. 새로운 걸레를 꺼내어 아직 축축한 바닥의 남은 물기를 정리하자니 고요한 새벽은 순식간에 지나가, 어둡기만 했던 방에도 어느새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방에 있지도 않은 괘종시계가 종을 울렸다. 다섯 번,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만 같은 그 섬찟한 소리. 벌써 다섯 시가 되어버린 걸까. 노엘은 젖은 걸레를 손에 쥔 채로 멍하니 물 자국이 남은 방 바닥을 바라본다. 낡은 방에 또 하나 지저분한 자국이 남아버렸다. 한참 물과 씨름하던 손가락은 퉁퉁 불어 쭈글쭈글해져서는 손 끝에 배인 굳은살 아래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아니 먹은 것이 없어서 속이 울렁거렸다. 토할 것 같다. 얼룩진 바닥,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비가 내리는 소리, 해가 뜨는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방 안은 환하기만 하다.
벌써 해가 떠 버렸는데,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을까? 자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지만 해가 떠 버렸다니까?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방 한 구석에 젖은 걸레를 잘 펼쳐두었다. 날이 더워서 금방 마를 것 같다가도, 날이 습해서 잘 마르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애매해, 지금 시각이 딱 그러했다. 아무 일정이 없었더라면 그냥 이대로 다시 침대에 뛰어 들어 잠을 청했을 텐데, 오늘은 마냥 그럴 수가 없는 날이었다. 맞춰두었던 알람이 울리기까지는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잠을 청하지 않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다.
그는 차마 침대에 다가서지 못한 채로 좁고 축축한 방의 한 구석에서 멍하니 생각을 이어갔다. 방의 제일 안쪽에 둔 기타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창가에 두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그는 조금쯤 늦은 안도를 잇새로 흘린다. 발바닥과 손은 여전히 습기가 가득했다. 채 닦이지 않은 빗물인지 새벽부터 움직인 탓에 맺힌 땀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비가 오는 탓인지 날이 우중충했다. 아마 한동안은 이런 날씨가 이어질 터였다. 그런 와중에도 여름 페스티벌은 날이 밀리지도 않고 잘만 열렸다. 오늘만해도 지방의 바닷가에서 열리는 여름 페스티벌 스케줄 때문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사실은 전날 저녁에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치조가 제안했었는데, 도저히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밤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 제대로 된 무대를 하려거든 적어도 평소와 같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데, 잠이라도 설쳤다간 다 망쳐버릴 지도 모르니까. 뭐, 비 때문에 이미 망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데, 아마 무대가 있을 그 시각에도 비가 내릴 텐데,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눈에 들어온 기타가 어쩐지 굉장히 쓸쓸하게 보였다. 그는 차마 침대에 눕지는 못하고, 그저 축축한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몸을 웅크리자 심장이 뛰는 소리가 어쩐지 더 크게 들려오는 듯 했다.
“힘들다.”
비가 오는데도 밖에서는 해가 온전히 뜨기가 무섭게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충분히 밝아졌다고 생각한 방은 아까보다도 더 밝아졌다. 불을 켜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이젠 정말 나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어쩌면 이치조가 이미 저를 데리러 이 근처에 도착했는지도 몰랐다. 노엘은 웅크렸던 몸을 아주 천천히 일으켰다. 악기 상태부터 살펴야 하는데. 그는 저릿한 팔과 다리의 감각을 느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악기란 것들은 섬세하고 예민하기 그지 없어서, 이런 습기에도 쉬이 상태가 안 좋아지곤 했다.
노래, 해야 하는데. 그는 문득, 언제였던가, 누군가들의 앞에서 보란 듯이 당당한 척 노래했던 때를 떠올렸다. 날이 우중충한 탓인가 몸이 무겁게 쳐졌다. 그러다 하하, 그는 헛웃음을 터뜨린다. ‘울고 있다면 나를 불러’?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으며 무대 위에 서 있던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TV 속 꾸며진 이야기를 보는 양 낯설어서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는 느린 속도로 차마 다가가지 못 한 채 노려보고만 있었던 침대로 향했다. 털썩, 소리가 나도록 몸을 던지자 비의 냄새인지 곰팡이의 냄새인지 낡은 집의 꿉꿉한 냄새가 피어 올랐다.
몸이 무거운 것이, 여름이라고 이런 비 오는 날에도 창문을 열고 잔 탓에 감기 기운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싶었다. 페스티벌인데.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자각은 있지만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잠들더라도 이치조가 와서 깨워줄 거라는 어떤 믿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본래가 보드라운 천이었다기 보단, 낡아서 부드러워졌단 설명이 더 어울릴 이불에 얼굴을 묻는다. 잠에서 막 깨어났던 순간 머리에서도 맥박이 뛰던 것을 상기시키자 두통이 오는 것 같기도, 오히려 두통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감기면 안 되는데, 몸 상태 하나하나가 이건 감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아닐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 그가 느끼기엔 그랬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깜빡인다. 아니, 애초에 개보다 못하지 않나. 오늘 노래 해야 하는데, 애초에 이런 애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사람이 있긴 한가? 페스티벌인데, 내가 분위기를 다 망칠 것 같아. 누구도 바라지 않겠지, 페스티벌에 이런 애. 빗물에 젖어 무거워진 커튼은 이제 더 이상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무게에 눌려 감긴 눈꺼풀에 매달린 속눈썹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뺨에 닿아오는 이불이 오늘따라 유독 더 보드랍고 포근하다고 생각했다.
“아, 미안&미안!”
“……어?”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이 아닌, 담요의 감촉에 노엘은 무겁게 달라붙어 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어라? 기억하고 있던 마지막은 분명 제 방의 낡은 침대 위에 몸을 뉘었을 때였는데, 지금 그는 침대에 누워있기는커녕 흔들리는 의자 위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뒤통수를 감싼 폭신함이나 어깨에 걸쳐져 고개를 받쳐주는 베개, 그리고 몸을 감싸듯 덮고 있는 담요까지, 분명 퍽 좋은 자리에 편안한 잠자리 환경임에 틀림 없었지만, 기억하고 있던 침대와는 영 다르다. 여긴 방 침대 위가 아니라…….
“나 때문에 깬 거야?! 에어컨 바람이 너무&너무 세서 담요만 살짝 덮어주려고 했던 건데!”
감기 기운 있는 것 같다고 그랬었지 않느냐며, 두 눈썹을 잔뜩 늘어뜨린 채 안절부절 못하며 말을 하는 이치조를 노엘은 아직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상황이 잘 읽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긴 어딘가로 향하는 기차 안인 것 같았는데, 언제 여기까지 와서 기차에 타고 있는 것인지는 도무지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아냐, 괜찮아. 괜찮은데…… 여긴?”
“아! 금방 도착이야! 오늘 무대 하느라 고생&고생 했으니까 집에 도착하면 푹 자야 해! 마침 또 내일은 오프잖아.”
“뭐?”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서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밖, 창문엔 빗방울이 고였다 떨어지고, 또 다른 빗방울이 부딪혀온다. 그리고 그는 문득 비구름에 가려지지 않는 뜨거운 태양 아래, 수 많은 팬들의 환호성 사이에 안겨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은 현실이었던가, 꿈이었던가, 상상이었던가. 땀이 찬 탓일까, 신발 속에 갇힌 발이 물에 젖은 듯 축축한 기분이 들었다. 낡은 방, 빗물이 고인 그 구석에 여전히 서 있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