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사계절 합작
Four seasons of Noël
사람의 인생은 곧잘 계절에 비유되곤 한다. 유년기의 봄. 청년기의 여름. 중장년기의 가을. 그리고……인생의 노년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겨울. 물론 사람이 그 계절을 다 거치리라는 법도 없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입맞추는 법이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나는 아마도 누군가의 마지막에서 시작된 삶이 아닐까, 하고 종종 생각하고는 했다.
노엘(Noël).
빌어먹게도 놀림당해온 이름. 물론 내 이름을 가지고 놀려대던 녀석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다 패주었다. 용서를 빌어도, 피를 볼 때까지 때려주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은 있는 법이다. 아니라고? 뭐, 됐어.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놀려대는 놈들이 나쁜거라고 생각해.
애초에 이런 이름을 지은 놈도 잘못이지! 빌어먹을 아버지. 볼 수만 있다면 한 대 패주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매 해,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마다 느껴야했던 비참함을 당신은 알까? 아마도 아명이었어야 할 이름은 그렇게 진짜 이름이 되고 말았다.
신을 믿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정말로 존재한다면, 도와달라고.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내게도 달라고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비참함에서 눈을 돌리고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던 때가. 그렇지만 현실의 온도는 언제나 나를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비참할 정도로 뼈저린 감각이었다.
그 다음엔 가질 수 없다면 원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거짓으로 쌓아올린 성벽 안에서 나는 태연을 가장했다. 다가오지 마. 어설프게 손을 뻗어놓고는 곤란한 표정을 짓지 마. 어차피 밀어낼 정도의 애정이라면 다가오지 마.
사랑에 굶주려, 애정을 원하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전부를 숨길 순 없다고 해도, 적어도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다. 버려질 거라면 원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바라지 않는 존재가 될 거라면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왜 그랬어요. 왜. 나는…….
태어나길 바라서 태어난 게 아니야.
나의 이름을 지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믿고 싶었다. 얼굴도 모르는 당신이 나를 사랑했다고 믿고 싶었다. 진실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거짓말이다.) 서랍 안의 편지. 마지막까지 나에게 건네지 않은 말들에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살아있어서 즐거운 기억같은 거, 없었다고. 그렇지만 탄생을 부정해버리면, 나는. 그래도 누군가는 나를 원하지 않을까. 이 세상 누군가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나는……. 나는.
나는.
유일하게, 거짓없이 토해낼 수 있는 창구가 음악이었다. 여유 같은 거, 없었지만. 비참함에 바닥을 기면서도 원하고 갈구할 수 밖에 없던 음악이었다.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면서도 지탄받지 않던 방식이었다. 음악에 몰두하는 동안은 세상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음악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이상’을 이야기하기엔 음악엔 돈이 들었다. 동료도 필요했다. 소통은 언제나 삐걱거렸고 밴드의 녀석들과는 매일 다퉜다.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된 그 날. 나는 옥상에서 별을, 보고 있었다.
 ̄너의 음악을 들어보았어.
엄청나게 수상한 그라상이었다. 대뜸 나타나서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하고 느닷없이 책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책은 난생 처음 보는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쏙독새의 별’.
반신반의하며 읽던 책에 나는 푹 빠졌다. 쏙독새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에, 자신을 태워가며 별이 된 녀석에게. 나는 영감을 받았고 마치 신들린 듯 곡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완성된 곡을 그라상에게 들려주니 만족한 듯 웃었다.
초 그레이트한 순간이었다.
데뷔를 하고, TV에 출연하고, 인터뷰에, 콘서트……. 정신없는 일정이 지나갔다. 그야말로 꿈과같은 나날. 볼을 꼬집어봐도 깨지 않는 꿈이었다. 어설프지만 그래도 전력으로 날 서포트해주는 이치조. 바니스타의 녀석들. 에이지, 마리마리, 야마상. 그리고 조금 다른 지평의 나를 좋아해주는 녀석들!
그라상은 언제 나타났냐는 듯 사라졌다. 묘하게 이상한 가게에 들른다던지, 수상한 선글라스를 강매 당한다던지,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닮았지만 다른 지평?의 녀석들과도 만나지 못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이미 바뀐 나의 삶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뭐.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그렇다는 거야.
녀석이 좀 보고싶기는 하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한번 보러오지도 않냐 싶지만 말이야. 나는 말이야, 정했어. 사랑받는 것이 두렵고 다시 버림받는 것이 두려울지라도, 이 최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사랑하기로!
어디선가 그라상이 논땅답다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아무튼 논땅은 아니니까! 그만하라고!
……흠, 흠.
묘하게 그라상을 닮은 건방진 고양이가 삐-삐- 시끄럽게 울기 시작한다. 또 뭐가 문제인지. 아무튼 외로울 새는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생각할 틈도 안 줘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뭐, 좀 우울하게 시작해버렸지만. 그렇다는 거야. 나의 겨울은 더 이상 누군가의 마지막이 아니고. 언젠가 찾아올 나의 마지막이어도, 아마 웃고 있지 않을까.
겨울Hiver을 찾고 있다고 했으니. 언젠가는 또 다시 그 건방진 배선과 마주칠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하지만 그 녀석이 떠올리는 겨울에는 더 이상 배선만 있진 않을 걸.
……그 녀석이 조금, 보고싶긴 하지만. 나에게는 이치조 녀석도 있고. 닮았지만 다른 지평의 녀석Laurant들과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렇지?
만나자, 어느 계절이든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는 계절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가을에 이어 겨울이 오듯이.
너와 나의, 계절에서.

